반려품 소개 | 기억도 나지 않을 시절부터, 무려 22년을 나와 함께한 필름카메라가 수명을 다했다. 가장 젊은 날의 우리 가족을 담아주던 이 삼성 자동 필카는, 열두살 혼자 첫 해외여행을 떠날 때 내 손으로 넘어왔다. 스무살, 종로 일대를 뒤져 겨우 유통기한 지난 필름 한 통과 배터리를 구해 다시 생명을 불어넣은 이후 4년간 함께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. 22년이나 되었으니 꽤 오래 버텼다. 언젠가 고장날 줄 알면서도 집을 나서며 오늘이 그날이 아니길 바랐다. 결국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 친구가 수명을 다했다고 느꼈다. 아쉬운 마음에 괜히 건전지를 교체해보고 리셋도 해보는 등 별짓 다 했다. 그러다 나도 모르게 눈물 찔끔 나왔다. 씁쓸하지만 이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. 얼마 뒤 새로운 필름카메라를 구입했지만, 20년이 넘는 기록을 담아준 동반자를 차마 버리지는 못할 것 같다. 그는 서랍 속에 잠들어있다. 가끔씩 꺼내 보며 추억하기도 한다.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며 즐거운 미소를 짓던 내가 생각나서. 한 장 한 장 마음을 담아 찍던 수천 장의 사진이 떠올라서.
Rest in peace, kenoxm140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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